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이러지마세요. 폐하, 폐하.제발. 방에만 있을게요. 다신 밖으로 안나올게요. 잘못했어요. 벌도 받을게요. 제가 받을게요. 죽이지 마세요. 좋은 사람들이에요. 죽이지 마세요. 

 

겁에 질려서 바들바들 떨면서도 지민은 정국의 옷자락을 놓지 못했다. 매일 수근거리며 욕만 하는 사람들이 뭐가 좋다고 저러고 있는지 태형은 조금 짜증이 났고 정국이 또 지민에게 몹쓸짓을 할까 걱정이 됐다. 태형이 잠깐 정국을 만나러 간사이에 지민은 무슨 일인지 방에서 나왔다. 

 

" 방에만 박혀 있으라고 한 거 같은데. 여기에 니 얼굴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기는 하겠어? "

 

아니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한 거잖아요. 좋은 분들이에요. 제가 나쁜 거잖아요. 데려가지 마세요. 폐하, 제발. 정국은 무너진 지민을 일으켜 태형에게 던지듯 넘겨주었다. 데려가 다리를 분질러 놓으라는 말에 놀란 건 지민이 아닌 태형이었다. 그저 방문 앞을 지키던 남자 둘이 죽을까 겁을 먹은 지민은 지금 제 다리 따위가 중요하지 않았다. 



*

 

 

지민은 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몸에 좋을 리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약에 취해 있을 때만 지민은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고, 정국이 그런 지민을 말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누나에게 편지가 왔다며 아무것도 써 있지 않은 종이를 들고 웃는 지민을 보고도 정국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잘됐다고 웃으며 하얀 뺨을 쓸어줄 뿐이었다. 약에서 깨서 현실로 돌아오면 지민은 제 목을 그을 물건을 찾다가, 목을 매달 끈을 찾다가,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 다시 약을 찾았다. 그런 지민을 볼 때마다 정국은 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각했지만 그럼에도 정국은 지민을 놔주지 못했다. 

어젯밤부터 계속 약에 취해 있었다는 지민은 풀린 눈을 하고 웃고 있었다. 제 품에 안겨오는 몸이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작아서 정국은 또 한 번 제 자신을 찢어발기고 싶었다. 매일 밤, 정국은 정신을 못 차리고 울 때까지 이렇게 작은 오메가를 몰아갔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알파향을 풀어 두고 멍투성이인 몸을 억지로 열어 정사를 가졌다. 아래에서 바르작거리는 오메가를 힘으로 찍어 누르고 아무렇지 않게 손찌검을 했다. 문득 정국은 제 방에 들어온 지민이 멀쩡히 걸어 나간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미안해. 내가 미안해. "

 

지민은 제게 사죄하는 정국의 목을 끌어안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주었다.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는 걸 정국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고, 이미 일어난 일도 되돌릴 수 없다. 정국은 세상의 이치를 잘 알고 있었지만 약에 취한 지민이 다정하게 저를 안아줄 때면 시간을 되돌리고만 싶었다. 악마가 존재한다면 흔쾌히 영혼도 팔 수 있었지만 제가 살고 있는 세상엔 신도 악마도 존재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신이 있었다면 박지민은 저를 만나서는 안됐다고 정국은 매일 밤 생각했다. 

 

 

*


박지민과 전정국의 관계는 지민의 자살기도 이후로 극단적으로 뒤집혔다. 아이를 잃은 지민은 제 목을 그으려 했고, 그걸 본 정국은 그제야 뭔가를 느낀 듯 했다. 지민은 임신이라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웃었다. 다시 제게 가족이 생긴다며 웃던 모습을 태형은 잊을 수가 없었지만, 지민은 임신 진단을 받은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하혈 때문에 다시 의사를 불러야 했다. 그리고 그날 밤에도 정국은 지민을 찾았다. 가셔야 한다고 말하자 허망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지민이 태형은 불안하기만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태형은 심각할 정도의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지민을 만날 수 있었다. 

지민은 일주일을 꼬박 누워있다가 깨어났고 정신이 들자 마자 가문의 결백이 밝혀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민의 아버지에게 반역죄를 뒤집어 씌웠던 자들을 잡아들이고 있다는 말에도 지민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태형이 의사를 불러오겠다고 자리를 비운 사이 지민은 침대 커버를 벗겨 목을 맸다. 깨어났다는 말에 물을 가지고 들어오던 간호사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지민은 죽을 수 있던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렸다.

 


*

 

 

평생, 평생을, 우리 아버지는, 

 

지민은 절규를 하고 있었다. 저렇게 울다가는 그대로 숨이 넘어갈 것 같아서 정국은 지민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지민이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던져 대는 통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아버지 머리가, 우리 누나들이, 막내는 다섯 살이었는데, 다섯 살. 제발, 제발 나 좀 죽여줘. 미안하다며, 미안하다 그랬잖아, 부탁이야, 제발. 이제 그만할래. 제발. 더 못 하겠어. 

 

정국은 사람을 불러 지민을 묶어야 했다. 지민이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은 정국이 유일했다. 간호사 둘이 들어오자마자 지민은 그들이 다칠까 쥐고 있던 책을 내려놓았다. 묶이는 걸 끔찍히 싫어하면서도 얌전히 손을 내주는 걸 보면서 정국은 마른 세수를 반복했다. 전부 너 때문에 죽은 거라며 들이밀었던 시체들과, 그 앞에서 무너지던 작은 몸이 잊혀지지 않았다. 

 

 

*

 

 

황제를 죽이려 했어. 법대로 하면 가문을 전부 죽여야 하는데 어차피 남은 건 나 하나뿐이라 편하겠다. 얼른 죽여줘. ? 부탁이야. 죽여줘. 제발. 

 

정국은 잠에서 깨자마자 제 목을 조르고 있는 반려를 보게 되었다. 작은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지만 멀쩡한 알파의 숨통을 조르기엔 부족하기만 해서 정국은 또 마음이 아팠다. 가느다란 손목엔 제가 남긴 자잘한 흉터들 위로 지민이 깨진 화병으로 난도질 해 놓은 상처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민은 곧 힘이 빠져 정국의 몸 위에 엎어졌다. 제 어깨에 얼굴을 묻고 제발 이제 그만 죽여 달라 애원하는 지민을 정국은 보내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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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어어,,너무 바빠요,,,방학하면 좀 자주 올 수 있으려나,,.ㅠㅠ

기다리신 분들 너무 죄송해요ㅠㅠㅠㅠ 덧글..덧글 조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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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관계 예에!!!!!!!!!!!!!!!

비밀글 비밀번호가 덧글에 있어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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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어. 우리 엄마, 아버지도 보고 싶고, 형이랑 누나들이랑 내 동생들도 다 보고 싶어. 보고 싶은데 광장에 달려있던 머리밖에 생각이 안나. 만나러 갈래. 제발. 보내줘. 여긴 싫어. 살아있기 싫어. 정국아. 제발. 이제 그만하자. 제발. 내가 이렇게 빌게. ? 그만하자. 제발. 부탁이야. 보내줘. 이제 갈래. 여기 있기 싫어. 제발. 보내줘. 제 발치에 엎드려서 우는 지민을 정국은 어쩌지 못했다. 지민에게 그러겠다고 말해줄 수도, 억지로 지민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서있던 정국은 지민이 제 손목을 물어뜯는 걸 보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지민을 말릴 수 있었다. 제 손을 틀어쥔 채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목소리가 지민은 지긋지긋했다.

 

*

 

지민은 정국과 함께하는 식사자리가 무서웠다. 제가 뭐라도 하나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정국은 뒤에 서있던 시종들 중 하나를 골라 목을 자르려 했다. 그런 정국을 말리려면 지민은 서둘러 정국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울어야 했다. 잘못했다고, 다 제 잘못이니 벌을 받겠다고 정국의 구두 위에 푸르게 멍이 든 뺨을 비비며 애원해야 정국은 피를 보지 않고 넘어가 주었다. 그리고 밤이 오면, 지민은 제 입으로 받겠다고 말한 벌을 받아야 했다. 심각할 정도로 손을 떨던 지민은 결국 스푼을 떨어뜨렸다. 요란한 소리 뒤에 들려오는 정국의 한숨 소리에 지민은 벌벌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발, 제발요. 제가 잘못한 일이잖아요. 이러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벌은 제가 받아야 하잖아요, 제발요. 붉게 짓무른 눈에는 다시 눈물이 가득 고였다. 오늘 정국이 고른, 스프를 내온 아이는 저보다도 어려 보였고 지민은 한 목숨이 제게 달려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미칠 것 같았다. 정국의 마음에 들만한 단어들을 나열하면서 지민은 제발 이쯤에서 알겠다는 대답이 들렸으면 하고 바랬다. 제 머리카락을 쓸어주는 손길에 고개를 든 지민은 오늘은 봐줄 수 없겠다며 웃어주는 정국을 보고 결국 눈물을 떨궜다. 하얗게 질린 아이가 끌려 나갔고 지민은 새 스푼으로 식사를 마쳐야 했다. 지민이 그릇을 비우는 걸 끝까지 보고서야, 정국은 식당을 나갔다.

 

*

 

풀어주세요. 묶여있는 거 싫어. 무서워. 잘못했어요. 착하게 굴게요. 묶지 마세요. 말 잘 들을게요. 풀어주세요.

지민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저와 눈을 맞추지 않으려 시선을 끝까지 내린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정국은 제 입술을 짓이기면서도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시퍼런 멍이 잔뜩 잡혀있던 손목이, 붉게 젖어가던 밧줄이 자꾸만 떠올라서 정국은 기어이 가까이가 지민의 상태를 확인해야만 했다. 하얀 비단천으로 묶인 손목은 멀쩡했지만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가늘었고, 정국이 가까이 온 것 만으로도 지민은 결국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빌면서 안 그래도 작은 몸을 한계까지 웅크렸다.

 

지민은 혼자 과거에 갇혀있었다. 이 성의 모든 곳이 지민에게는 트라우마 그 자체였지만 가끔씩 지민은 혼자 과거로 돌아갔다. 보통은 자살기도를 막으려 묶어놨을 때나 목욕을 하고 있을 때, 드물게는 그냥 복도를 걷다가도 지민은 학대 당하던 어린 오메가로 돌아갔다. 정국이 옆에 있을 때는 하얗게 질려 뭐든 제가 다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 애원했고, 정국이 없을 땐 태형을 붙잡고 방에 돌아가야 한다고, 폐하가 화를 낼 거라고 울었다.

 

정국은 당장이라도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겁 먹지 말라고 괜찮다고 안아 달래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정국도 잘 알고 있었다. 제가 가까이 가기만 해도 어쩔 줄을 모르는데 정국은 지민을 더 무섭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민은 묶이는 걸 못 견뎌 했지만 과거의 정국은 다 헤진 손목을 보고도 매번 지민을 묶어두었다. 싫다고 울면 조용히 숨을 죽일 때까지 뺨을 때리거나, 밧줄을 아예 손목을 짓누르는 수갑으로 바꿔버렸었다. 정국은 오늘도 제 자신을 죽여버리고만 싶었다.

 

*

 

귀가 들리지 않았다. 고막이 찢어져버렸다고 종이에 적어주면서 태형은 곧 나을 수 있을 거라고 위로했지만 지민은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이었다. 파랗게 멍이 잡힌 얼굴이 태형은 안쓰럽기만 했다. 어제는 해가 뜰 시간이 다되어서야 침실에서 지민을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웬일로 정신을 잃지 않은 지민은 겁에 질려 있었는데, 시트가 덮인 채로 지민을 안고 나온 태형은 지민을 씻기려다 말을 잃었다. 학대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아있는 몸은 아직도 떨림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대체 뭘로 맞은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지민에게 안 좋은 기억을 괜히 한번 더 떠올리게 할 뿐인 것 같아서 태형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태형은 우는 지민을 서둘러 씻겨 침대에 눕혔다. 아프다고 제게 매달려 우는 지민에게 태형이 해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늘어지는 지민을 일으켜 수면제를 건네주면서 태형은 향초를 켰다. 지민은 이제 잠 드는 법을 잊어버렸다. 매일 밤 실신하는 게 일상인 지민이 정신이 있는 채로 방에 돌아오면, 그날 밤은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밤새도록 앓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나서야 태형은 수면제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몸에 가득한 멍이 너무 선명해서 태형은 입술을 깨물었다. 린치에 가까운 폭력을 말해주는 듯한 멍이 온몸에 남아있었다. 황제가 아무리 지민을 막 다룬다고는 하지만 이런 상태는 처음이었고, 충격을 받은 태형이 지민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침이 와서야 태형은 지민이 고막을 다쳤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료를 보게 하고 싶었지만 황제의 귀에 의사가 다녀갔다는 얘기가 들리면 또 아픈 지민이 끌려가야 할 것만 같아서 태형은 혼자 조용히 의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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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온다해놓고 한달..? 두달만인가..죄송합니당.. 현생이 넘나 바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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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만히 식탁에 앉아있던 날이었어. 입맛이 없었는데 갑자기 네 손에 칼이 들리더라. 뭔가 했는데 식탁에서 주방장의 손목이 잘렸어. 그리고 그 피투성이가 된 식탁에서 나는 끝까지 밥을 먹었다? 남기면 그 때는 목을 자를 거라고 니가 그랬었거든. 표정이 왜 그래. 너도 그때는 웃고 있었잖아, 정국아. 저녁을 먹다 말고 지민이 입을 열었다. 지민의 말에 정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민의 옆에 무릎을 꿇고 또 잘못을 빌었지만 정작 지민은 그런 정국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저녁식사를 마쳤다. 미안한 척 하지마. 아니라는 거 다 알아. 웃으며 일어난 지민은 정국을 일으켜주고 방으로 돌아갔지만 정국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

 



*

 



아파요. 말 잘 들을게요. 묶지 마세요. 아파서 그래요. 가만히 있을게요. 하지마세요. 손을 등 뒤로 숨기면서 지민은 숨을 헐떡이며 울었다. 뺨을 두어대 더 맞고서야 지민은 덜덜 떨리는 제 손을 건네주었다. 다시 묶인 손목에서는 금방 피가 베어 나오기 시작했고 지민은 몸을 비틀다가 또 뺨을 맞았다. 혈관이 터졌는지 코에서 피가 흘러 하얀 시트를 적시기 시작했지만 정국은 신경 쓰지 않고 손찌검을 계속했다. 착하게 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그러겠다고 대답하는 지민에게는 제게 쏟아지는 폭력이 그만 멈췄으면 하는 생각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정사는 지민이 정신을 놓고 나서야 끝이 났다. 늘어진 지민을 안고 나가면서 태형은 입술을 깨물었다. 방안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알파 향이 가득했다. 이곳에 있던 어린 오메가가 얼마나 버거웠을 지를 생각하면서 태형은 정국에게 가벼운 인사를 마치고 침실을 나왔다. 겨우 사라지기 시작했던 멍이 다시 잡힌 얼굴이 보였다. 태형은 지민이 안쓰럽기만 했다. 지민에겐 살아있어야 한다고 늘 말하지만 차라리 그 때 함께 목이 잘렸어야 했다고 태형은 매일 생각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지민이 가진 거라고는 반려를 창녀 취급도 해주지 않는 알파와 제 편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커다란 성이 전부였다.

 



*

 



나는 니가 욕실로 부를 때가 제일 무서웠어. 숨이 안 쉬어지는 건 진짜 무서웠거든. 너는 내 머리를 계속 물 속에 넣더라. 살려달라고 울면 그냥 죽으라고 그러면서. 그런 게 재미있었어? 지민이 정국의 어깨에 기대면서 물었다. 미안하다고 되뇌는 말을 들으면서 지민은 웃었다. 나는 우리 아버지 때문 인줄 알았어. 우리 아버지가 널 죽이려고 해서 그 화를 다 나한테 푸는 거라고 생각했어. 다섯 살이었던 내 동생도 죽을 정도면 우리 아버지가 정말 나쁜 짓을 했나 보다 했거든. 근데 아니었잖아, 우리 아버지가 아니었잖아.

 

" 이제 죽여줘. 정국아. "

 

가지고 놀만큼 가지고 놀았잖아. 이제 그만하고 죽여줘. 그만 살고 싶어. 나는 네 얼굴을 보는 게 힘들고,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게 힘들어. 미안하다는 소리도, 잘못했다는 소리도 그만 듣고 싶어. 잘못했다고 말만 하면 뭐해. 너는 날 계속 옆에 잡아두려고 하잖아. 이제 놔줘. 죽여줘. 나도 목을 잘라도 되고 그냥 동맥을 그어줘도 괜찮아. 싫으면 이것만 풀어줘. 내가 알아서 죽을게. 귀찮게 안 할게. 지민은 침대 시트로 목을 매 죽으려 했지만 의자가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들어온 태형에게 들켜 실패했다. 벌써 사흘째 두 손이 묶여있는 지민은 매일 밤 떠나려 하지 말라고 매달리는 정국이 끔찍하기만 했다.

 



*

 



제발. 가기 싫어. 안 갈래. 제발. 오늘만. 태형아. 제발. 부탁이야. 오늘 하루만.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지민은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옷자락 사이로 보이는 멍울과 손목에 선명히 남은 상처를 보면서 태형은 도저히 지민을 일으켜 황제의 앞에 끌고 갈 자신이 없었다. 힘 없이 제게 안길 때조차 태형은 지민을 정국의 앞에 데려가는 게 버거웠고, 지민이 제게 가기 싫다고 매달리기라도 하면 태형은 그냥 미쳐버리고만 싶었다. 일어서지 않으려는 지민을 억지로 일으켜 안아 들자 지민은 태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먹였다. 오늘만. 제발. 오늘 하루만, 제발. 애원하는 지민을 괜찮다고 달래주는 태형도 뭐가 괜찮은지는 알지 못했다. 괜찮은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정국이 있을 침실 문 앞에 지민을 내려두고 태형은 무섭다고 우는 지민에게 또 괜찮을 거라고 말하며 문을 열어 주었다. 한참이나 들어가지 못하고 가만히 그 자리에 서있던 지민은 정국이 왜 가만히 있냐고 타박하자 그제야 발걸음을 땠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문을 닫은 태형은 머리가 아파왔다. 문밖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폭력적인 알파 향에 태형은 안에 있을 오메가가 가엽기만 했다. 방안에선 얼마 못 가 이러지 마시라고 우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문을 열어보려는 건지 문고리가 조금 돌아갔고, 바로 뒤이어 살이 찢기는 마찰음이 들렸다. 문을 막고 선 태형은 귀를 막아도 들리는 소리에 한숨을 쉬며 마른 세수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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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오려고 노력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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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을 믿어달라던 지민은 나중에는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울었고, 숙청이 진행된 후에는 시체를 거두게 해달라고 울었다. 제 오메가에게 모진 짓이란 모진 짓은 다 하면서도 정국은 절대 반역자의 자식을 폐위시키지 않았다. 지민은 방에 갇혀서 울다가 정국이 식사자리에 부르면 억지로 음식을 입에 밀어 넣다가 돌아오거나, 침실로 부르면 밤새 제 알파를 받아들이는 게 지민이 하는 일의 전부였다. 그리고 태형은 정국의 부름에도 가기 싫다고 버티는 지민을 힘으로 끌어내 정국의 앞에 데려다 놓는 일을 맡고 있었다.

정사가 끝난 침실에 들어가보면 지민은 숨만 겨우 쉬며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뜨거운 몸을 안아 들어 다시 방으로 데려오면 지민은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다시 쏟아내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우는 지민의 몸을 씻기면서 태형은 늘 언제쯤 지민이 울지 않는 날이 돌아올까 생각했다. 작은 몸에 상처가 끊이지 않고 보였다. 오늘도 손목이 묶였는지 다 헤진 손목이 아파 보였다. 이제 막 성년을 맞은 오메가가 잘못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황제와 결혼해 얌전히 성에 박혀 살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지민의 세상은 한 순간에 전부 무너져 내렸다
.

 

*

 


" 내 눈 앞에서 아버지의 목이 잘렸어. 너는 광장에 달린 그 머리를 억지로 보게 했어. 오른쪽부터 하나하나 그게 누구 머린지 설명해주면서. 내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내 뒤에 서있던 사람들이 한 명씩 죽었어
. "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빌었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때 나를 내려다보던 네 얼굴을 기억해. . 그리고 그날 밤에는 강간을 당했지. 여기에 손이 묶였었어. 지민이 침대 끝을 손으로 훑으며 웃었다. 나는 계속 울었던 것 같아. 왜 그랬지. 아팠었나.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숨이 넘어가라 웃는 지민의 앞에서 정국은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간간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따위의 참회의 말이 들려왔지만 지민은 그 말에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한참을 웃고만 있던 지민은 문 밖에서 들리는 노크소리에 웃는 걸 멈췄다
.

"
찾으시네. 가보세요. 폐하
. "

침까지 돌아오지 않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지민이 정국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웃었다. 정국은 고개를 들어 지민을 올려다봤다. 하얀 목에 선명히 남아있는 상처를 볼 때마다 정국은 제 자신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지민은 어줍잖게 손목을 긋거나 하지 않았다. 지민이 살아있는 건 순전히 지민이 끝까지 칼을 밀어 넣기 전에 정국이 지민을 넘어뜨렸기 때문이었다. 정국은 목에 서늘한 칼날을 찔러 넣던 지민의 모습을 단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었고, 그렇게까지 지민을 몰아간 건 제 자신이라는 것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

 


유골은 화장하게 해주세요
. 제발. 부탁이에요. 고향으로 보내게 해주세요. 제발요. 눈물이 쉬지 않고 떨어졌다. 며칠 사이에 눈에 띄게 어두워진 지민에게 이제 생기라고는 없었다. 살이 얼마나 빠진 건지 다 흘러내리는 옷을 걸친 채로 지민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떨고 있는 지민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정국은 지민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젖은 뺨을 내리치고, 고작 이런 일로 시간을 뺏었냐며 앙상한 발목을 짓밟았다. 용서를 구하며 무너져 내리는 지민을 태형에게 넘겨주면서 정국은 방에서 나오지 못 하게 하라고 덧붙였다
.

핏줄이 터진 뺨에 연고를 발라주면서 태형은 제 입술을 짓이겼다. 황제는 어린 오메가를 학대하고 있었다. 반역자 집안이라며 한 가문의 목을 모조리 잘랐으면서 정작 반역을 주도한 가주의 자식은 반려로 삼고 있었다. 의회는 사형을 외치다 곧 폐위로 의견을 굳혔지만 정국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경우 없는 일이라며 정국을 설득하려던 사람들은 지민이 정국에게 어떤 취급을 받는지 본 뒤로 전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태형은 사람들이 보게 된 건 정말 얼마 되지 않는 다는 걸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

 

*


우리가 그렇게 싫었어? 반역이라고 몰아붙여서 전부 죽일 만큼? 굵은 눈물 방울이 쉬지 않고 떨어졌다. 정국이 다가갔지만 지민은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제 가
족들의 기일이 다가오면 지민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울다가 정신이 들면 다시 울기를 반복했다. 서럽게 울고 있는 지민을 볼 때면 정국은 차라리 웃으며 제게 독한 말을 하는 지민이 더 낫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지민은 침대를 붙잡고 실신할 때까지 울어댔고, 정국은 지민이 울다 지쳐 쓰러지고 나서야 젖은 뺨을 닦아줄 수 있었다.

가볍기만 한 몸을 들어 침대에 눕히면서 정국은 과거의 저를 정말 진심으로 죽이고 싶었다. 박지민을 아무렇지 않게 집어 던지던 정국은 단 한번도 지민이 심각할 정도로 가볍기만 하다는 걸 생각해본 기억이 없었다. 잠든 지민을 붙잡고 한참이나 제 잘못을 빌면서 정국은 끝없는 자기혐오를 계속했다. 의식이 없는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 역시 같잖은 자기위로일 뿐이라는 걸 정국도 모르진 않았지만 정국이 할 수 있는 건 그런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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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과거, 이런 건 현재

알오에 중세를 끼얹고.. 왕좌의 게임보다가 후회공이 보고싶어서 쓰는 글

+폰으로 보니까 과거 현재 폰트 구별이 안되어있네요ㅜ 컴으로 보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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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예쁘다, 예쁘다 해주니까 아주 미친 거야? "

 

지금 뭐하는 거야. 지민아. 태형은 한숨을 쉬며 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지민은 과도를 제 목에 찔러 넣으려 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보이는 게 죽어버리겠다며 저를 협박하는 제 오메가라니, 태형은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지민이 울면서 하는 말은 아이가 보고 싶다는 게 전부였다. 과도를 쥐고 있는 손은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고, 겁을 먹은 건지 하얗게 질려있는 지민이 태형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된다고 벌써 몇 번이나 못을 박은 것 같은데 박지민은 여전히 마음을 접지 못한 것 같았다. 아이를 아끼는 지민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렇게 나온다면 조금 곤란했다.

 

" 니가 잘못 생각하는 게 있어. 지민아. "

 

니가 죽으면 니 애가 그대로 니 꼴이 날거야. 조그만 애가 끌려와서 여기 묶여있는 꼴이 보고 싶으면 지금 죽고, 아니면 빨리 그거 내려놓고 이리 와서 빌어. 애를 저처럼 살게 하겠다는데, 지민이 제 목숨을 끊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목에 칼만 들이밀면 제가 뭐든 해줄 거라 생각한 듯한 지민이 태형은 멍청해 보이기만 했다. 지민은 얼마 못가 쥐고 있던 과도를 떨어뜨렸다. 벌벌 떨면서 태형의 앞에 나온 박지민은 이미 서럽게 울고 있었다. 지민과 피를 나눈 가족들은 이미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시 생긴 제 혈육이 지민은 너무 소중하기만 했고, 지민은 그런 아이가 잘못되는 걸 볼 수 없었다.

 

예쁜 입술에서는 곧 참회의 말이 쏟아져 나왔고, 태형은 웃으며 제 앞에 꿇어앉은 지민의 머리채를 잡았다. 저번에도 말했잖아, 이번 아이는 너랑 똑같이 생겨서 죽이지 않을 거라고. 니가 죽으면 이제 걔가 대신 니 자리를 채우겠지. 아이 얘기가 나오자 지민의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우느라 다 뭉그러진 발음으로 잘못했다고 매달리는 지민을 태형은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지민아. 이렇게 사는 건 너 하나로 충분하잖아. 우리 아이는 제대로 된 환경에서 자라야지. 너처럼 여기 갇혀서 내 오메가가 되면 안 되잖아.

 

" 그렇지? "

 

큰 손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뺨을 쓸었다. 박지민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숨이 넘어갈듯이 울면서 그러지 말라고 애원하는 지민이 태형은 귀엽게 보이다가도, 목에 칼을 들이대던 모습을 생각하면 그냥 넘어가 줄 수가 없었다. 그러지마. 죽으려고 안할게. 계속 여기 있을게. 얌전히 있을게. 내가 말도 잘 듣고, 나가려고도 안할게. 그러지마. 제발. 내가 있잖아. 나 하나면 되잖아. 잘못했어. 다시는 안 이럴 거야. 정말이야. 안 그럴게. 그러지마. 아기한테 나쁜 짓 하지 마. 제발. 태형아. 대답해줘, 제발. 안 그럴 거잖아. 안 그럴 거라고 해줘. 태형아.

 

지민이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면서도 태형은 대답이 없었다. 지민이 먼저 제게 안겨오자 태형은 그제야 지민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 사진은 없어. 있던 것도 다 버릴 거야. 한번만 더 이래봐. 지민아. 어떻게 되나 보고 싶으니까. 안 그러겠다고 쉴 새 없이 고개를 젓는 박지민을 보면서 태형은 역시 박지민은 다루기 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멍청한 오메가는 제 아이를 사랑했다. 이름도 모르고, 안아본 적도 없는 아이를 사랑하는 박지민이, 태형은 고마울 뿐이었다. 제가 지민의 아이만 들먹이면 지민은 뭐든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 지민아. 포기하면 편해.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

 

. 알아. 알았어. 포기할게. 만나려고 안할게. 여기서 나가려고도 안할게.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정말이야. 이제 포기할게. 아기한테 안 그럴 거지? 태형아. 내가 있잖아. 나만 있으면 되잖아. 태형의 가슴팍에 지민은 열심히 제 뺨을 비볐다. 애초에 지민이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항상 우위에 있던 건 김태형이었지만, 그래도 반항이 소득이 있었던 관계를 온전히 태형의 손에 쥐어준 건 지민이었다. 태형의 입에서 아이의 얘기가 나오면 지민은 뭐든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중한 아이를 제 꼴로 만들겠다는데 지민이 더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2.

날이 밝자마자 의사가 찾아왔고, 지민은 감히 제 목숨으로 태형을 협박하려 했던 벌을 받았다. 이러지 말라는 애원 한번을 못 해보고 지민은 순순히 제 손목을 내주었다. 인대를 끊는 것보다 손을 자르는 게 더 쉽다는 말은, 제가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으면 아예 손을 잘라버리겠다는 의미라는 걸 지민은 알고 있었다. 한순간에, 오른쪽 손목에 인대가 끊겼다. 마취는 태형이 거절했고, 의사는 정말이냐고 물으며 지민을 쳐다봤지만 지민은 태형의 품에서 떨고 있다가, 태형이 묻자 그저 넋을 놓고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의사가 돌아가자마자 태형은 지민을 안았다. 망가진 손목으로는 이제 침대 시트를 휘어잡을 수도, 태형의 허벅지를 밀어낼 수도 없었다. 지민은 태형을 받아내는 게 버거웠지만 태형은 이미 지쳐 늘어져 있는 지민을 몇 번이나 다시 울리고, 또 울렸다. 지민이 태형의 아래에서 벗어나려 침대를 기면 태형은 하얀 붕대가 감긴 손목을 짓이겼다. 부르튼 입술에서 나오던 아프다는 탄식은 얼마 가지 않아 전부 잘못했다는 사죄의 말로 바뀌었고, 곧 놔달라는 부탁이 되었다. 그 애원의 과정을 즐기면서 태형은 오랜 시간을 들여 제 오메가를 탐했다. 태형이 만족하고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지민은 엉망인 몸을 하고 숨만 겨우 쉬고 있었다.

 

3.

태형은 더 이상 지민에게 아이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지민과의 대화는 이제 일방적인 명령이 전부였다. 6개월이 넘어가자 지민은 그저 누워서 울다가 몸을 내주며 울고 밥을 먹으며 울고 자기 직전까지 울다가 울면서 일어났다. 엉망으로 짓무른 눈가는 지민이 하루 종일 울고만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태형이 끝없이 지민을 몰아붙여도 지민은 그저 서럽게 울기만 할뿐, 태형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박지민이 괘씸해서 아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일 때면 태형은 일부러 더 깊이 제 성기를 밀어 넣었고, 점점 더 자주 발정제를 놓았다.

 

발정제를 맞추거나 사이클이 돌아와야 지민은 겨우 제게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마저도 다 갈라진 신음소리나 아프다는 애원이 전부였지만 태형은 그렇게 밖에 지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지민은 점점 더 말라갔고 한 달에 두어 번 오던 의사가 이틀에 한번 꼴로 들르게 되고 나서야 태형은 심각성을 느꼈다. 막아버렸던 창문을 다시 들어내고 지민에게 가운이 아닌 옷다운 옷을 사다주기 시작했다. 손찌검을 하지도, 거친 관계를 갖지도 않았지만 지민은 여전히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실신하기 시작한 뒤로도 지민이 몸이 나아지면 아이를 보여주겠다는 말을 듣기까지는, 3개월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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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이클이 돌아오면 태형은 끝없이 지민을 안았다. 사이클이 왔을 때만 지민은 유일하게 태형을 겁내지도 혐오하지도 않았다. 제가 먼저 다리를 벌리고, 박아달라며 매달리고, 좋다고 울었다. 사이클이 끝나면 한동안 자괴감에 시달리는 듯했지만 울혈이 가득한 몸으로 넋이 나가 앉아있는 모습도 제법 예뻐서, 그런 사소한 것까지 신경 써줄 필요는 없다고 태형은 생각했다. 태형은 지민의 사이클을 기다렸지만 정작 지민은 주기가 돌아오면 그냥 죽고만 싶었다. 저를 안아달라 매달리는 제 모습이 끔찍했고, 제 안에 차있는 정액을 긁어내면서 또 임신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해야 했다. 아이를 낳는 건 제 약점을 태형의 손에 쥐어주는 것뿐이라는 걸 지민은 알고 있었다.

아이를 가졌다고 태형이 제 욕구를 참아주는 것도 아니었으며, 지민에게 손찌검을 덜 하는 것도 아니었다. 지민은 이미 셀 수 없는 유산과 두 번의 출산을 겪었고 태형은 아이를 그저 저를 맘대로 다루기 위한 도구 정도로 생각했다. 아이를 낳았음에도 지민은 제 아이를 한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빼앗겼다. 아이는 다른 곳에서 키워졌고 지민은 태형을 통해서만 아이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끔씩 사진을 찍어오기도 했지만 그 사진 역시 지민을 맘대로 다루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사랑하면서 지민은 태형의 뜻대로 휘둘렸다.

태형은 어두운 방에 불을 켰다. 창문을 다 막아놓은 탓에 오피스텔에는 인위적인 형광등 말고는 빛이 들어오지 않았는데, 지민은 혼자 있을 땐 늘 방에 불을 켜지 않았다. 박지민은 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있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웅크려있던 지민은 방에 불이 들어와도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았다. 태형은 지민의 무심함이 익숙한 듯 제 겉옷을 벗어 걸어두고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선물 가져왔는데. 안 볼 거야? 태형이 선물을 거론하자 지민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여주었다. 지민은 서둘러 눈 앞에 보이는 사진을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태형은 아직 안된다며 사진을 제 등 뒤로 숨겨버렸다.

" 왜 그래.."

그러지마. 오랜만이잖아. 제발. 태형아. 이러지마. 괴롭히지마. 예쁜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박지민을 더 몰아가 울려야할지 생각하던 태형은 지민의 말대로 정말 오랜만이라는 생각에 순순히 사진을 넘겨주었다. 지민이 마지막으로 봤던 사진의 아이는 누워서 젖병을 물고 있었는데, 지금 아이는 혼자 서서 웃고 있었다. 태형이 잠깐 눈을 뗀 사이에 지민은 언제부턴가 또 울고 있었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 태형은 한순간에 지민의 손에서 사진을 빼앗았다. 사진이 찢어져 버릴까봐 힘을 줘보지도 못하고 순순히 사진을 뺏긴 지민은 사진을 돌려달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태형을 올려다 보는 지민에게 태형은 하는 걸 보고 두고 가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씻고 오겠다며 태형이 욕실로 향하자마자 지민은 협탁 위에 놓인 사진을 잡아보지도 못하고 쳐다보기만 했다. 멋대로 만졌다간 저번처럼 사진을 다 태워버릴 것만 같아서 지민은 두 손을 맞잡고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사진을 눈에 담아놓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아주 가끔, 정말 가끔 태형이 가져다주는 사진 한 장이 지민이 가질 수 있는 전부였다. 심지어 그마저도 태형은 지민이 제 말을 듣지 않을 때면 다 태워버리곤 했다. 지민은 아이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지민이 아이의 이름을 물어봤던 날, 태형은 어차피 불러줄 수도 없을 텐데 알아서 뭐하겠냐고 비웃으며 대답해주지 않았다. 태형은 박지민과 아이를 만나게 해 줄 생각이 없었다.




2.
지민아. 난 정말 너한테 잔인해지기 싫어. 이미 여러번 겪었잖아. 아직도 포기가 안돼? 태형은 제 발 밑에 엎드려서 잘못했다고 우는 박지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지민이 나가려고 했을 땐 지민의 발목을 부러뜨리고 목줄을 매어두었다. 두 번째로 지민이 사라졌을 땐 지민의 가족들이 살던 집에 불을 질렀고, 지민의 첫 아이는 지민이 세 번째로 오피스텔 밖으로 나가려 했을 때 태형이 죽여 버렸다. 지민의 가족들은 집과 함께 다 사라져버렸고, 태어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아이는 제 아버지의 손에 죽었다. 지민은 또 이곳에서 나가려한 제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내가 잘못했어. 진짜 잘못했어. 태형아, 제발. 내가 다 잘못했어. 내 다리 자를래? 자르고 싶어 했잖아. 그래도 돼. 잘라도 돼.  아기한테 그러지마. 죽이지 마. 내가 잠깐 미쳤어. 잘못했어. 정말이야. 잘못했어. 태형아. 잘못했어. 잘못했어요. 다신 안그럴게요. 제발요. 다리, 다리 자르세요. 이제 안나갈거에요. 필요없어요. 자르셔도 돼요. 태형은 지민이 웃겼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아이가 뭐가 그렇게 소중하다고 차라리 제 다리를 자르라는 말이 저렇게 쉽게 나오나 싶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넘겨주면서 태형은 그러게 왜 멍청한 짓을 했냐고 물으며 웃었다.

잘못했다고 지민이 다 뭉개진 발음으로 빌었다. 입이 닳도록 잘못했단 말만 되풀이 하는 지민이 태형은 슬슬 지겨웠다. 태형은 어차피 아이를 죽일 생각 같은 건 없었다. 지민아, 지민아 하고 몇번이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고개를 든 지민은 울어서 엉망인 얼굴로 태형을 올려다봤다. 아냐 이번엔 안 그럴 거야. 이번엔 나보다 너를 더 닮았더라고, 그리고 아무리 나라도 우리 아기한테 그렇게 나쁜 짓은 하기 싫잖아. 지민은 소름끼치는 이유에도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태형이 아이를 죽일 생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지민은 조금 진정한 듯 보였는데, 태형은 아직 지민을 용서해줄 생각이 없었다.

" 물었잖아. 왜 그랬어. "

왜 나가려고 했어. 태형은 웃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뺨을 만지자 지민은 벌벌 떨면서 그 큰 손에 제 뺨을 비볐다. 대답하기 싫어? 꼭 이럴 때만 애교를 부려. 그치? 이유는 많았다. 김태형이 싫었다. 그렇게 싫은 김태형을 매일 기다리는 것도 싫었고, 제 몸을 부술 듯이 안는 성관계도, 말을 안들을 때마다 쏟아지는 손찌검도, 가끔씩 팔목에 놓아주는 주사도, 창문하나 없는 곳에 갇혀있는 것도, 전부 싫었지만 지민은 태형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라는 걸 잘 알았다. 지민은 결국 잘못했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잘못했다고 울면서 용서해달라고 빌었지만 김태형은 잔인했다.

지민이 대답을 회피한다는 걸 눈치 채고 부터 계속해서 이유를 물었고, 지민이 용서를 구하다 지쳐 쓰러지고 나서야 태형은 지민을 몰아붙이는 걸 그만두었다. 박지민이 자는 사이에 발목의 힘줄을 아예 끊어놓을까 싶었지만 태형은 안 그래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지민에게는 그다지 소용이 없는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어차피 지민은 이곳에서 나갈 수 없었다. 이제 그만 깨달을 때도 된 것 같은데, 그 많은 희생을 치뤄놓고도 지민은 아직도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았다. 생각보다 머리가 나쁜건지,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건지 생각하면서 태형은 대체 무슨 벌을 줘야할까 고민했다.




3.
" 어제 처음으로 혼자 걷더라고. "

금방 넘어져서 우는데 우는 얼굴이 너랑 똑같더라. 태형이 아이 얘기를 하기 시작하자 지민은 그제야 태형에게 관심을 조금 보이는 듯 싶었다. 밥은 왜 하나도 안 먹었어? 지민아. 니가 이렇게 나오면 내가 없는 동안 계속 재워두고 포도당을 넣어주는 방법도 있어. 그렇게 있고 싶어? 내가 있을 때만 일어나 있을 수 있게 해줄까? 그건 싫잖아. 대화주제를 옮기자마자 다시 눈을 감아버린 지민을 보면서 태형은 화를 삭히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지민아. 밥 먹어. 니가 계속 굶으면 니가 굶는 만큼 니 새끼도 굶길 거야. 어린 게 배고파서 울면 불쌍하잖아, 잘 먹어야지. 내일부턴 밥 먹을 거지? 태형의 말에 지민은 또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 알파는 저를 다루는 법을 끔찍할 만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같이 씻을까, 먼저 씻을래. 익숙한 태형의 말에 지민은 먼저 씻겠다며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지민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한참을 일어서지 못하고 앉아있는 지민을 보면서 역시 어젯밤은 많이 심했었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나가려 했던 걸 고려하면 적당한 수위의 벌이었다고 태형은 생각을 고쳤다. 겨우 일어나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꼴이 제법 안쓰러워 보여서 태형은 오늘은 좀 봐줘야겠다는, 곧 있으면 머릿속에서 사라질 별 의미 없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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