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 우리 엄마, 아버지도 보고 싶고, 형이랑 누나들이랑 내 동생들도 다 보고 싶어. 보고 싶은데 광장에 달려있던 머리밖에 생각이 안나. 만나러 갈래. 제발. 보내줘. 여긴 싫어. 살아있기 싫어. 정국아. 제발. 이제 그만하자. 제발. 내가 이렇게 빌게. ? 그만하자. 제발. 부탁이야. 보내줘. 이제 갈래. 여기 있기 싫어. 제발. 보내줘. 제 발치에 엎드려서 우는 지민을 정국은 어쩌지 못했다. 지민에게 그러겠다고 말해줄 수도, 억지로 지민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서있던 정국은 지민이 제 손목을 물어뜯는 걸 보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지민을 말릴 수 있었다. 제 손을 틀어쥔 채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목소리가 지민은 지긋지긋했다.

 

*

 

지민은 정국과 함께하는 식사자리가 무서웠다. 제가 뭐라도 하나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정국은 뒤에 서있던 시종들 중 하나를 골라 목을 자르려 했다. 그런 정국을 말리려면 지민은 서둘러 정국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아 울어야 했다. 잘못했다고, 다 제 잘못이니 벌을 받겠다고 정국의 구두 위에 푸르게 멍이 든 뺨을 비비며 애원해야 정국은 피를 보지 않고 넘어가 주었다. 그리고 밤이 오면, 지민은 제 입으로 받겠다고 말한 벌을 받아야 했다. 심각할 정도로 손을 떨던 지민은 결국 스푼을 떨어뜨렸다. 요란한 소리 뒤에 들려오는 정국의 한숨 소리에 지민은 벌벌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발, 제발요. 제가 잘못한 일이잖아요. 이러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벌은 제가 받아야 하잖아요, 제발요. 붉게 짓무른 눈에는 다시 눈물이 가득 고였다. 오늘 정국이 고른, 스프를 내온 아이는 저보다도 어려 보였고 지민은 한 목숨이 제게 달려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미칠 것 같았다. 정국의 마음에 들만한 단어들을 나열하면서 지민은 제발 이쯤에서 알겠다는 대답이 들렸으면 하고 바랬다. 제 머리카락을 쓸어주는 손길에 고개를 든 지민은 오늘은 봐줄 수 없겠다며 웃어주는 정국을 보고 결국 눈물을 떨궜다. 하얗게 질린 아이가 끌려 나갔고 지민은 새 스푼으로 식사를 마쳐야 했다. 지민이 그릇을 비우는 걸 끝까지 보고서야, 정국은 식당을 나갔다.

 

*

 

풀어주세요. 묶여있는 거 싫어. 무서워. 잘못했어요. 착하게 굴게요. 묶지 마세요. 말 잘 들을게요. 풀어주세요.

지민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저와 눈을 맞추지 않으려 시선을 끝까지 내린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정국은 제 입술을 짓이기면서도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시퍼런 멍이 잔뜩 잡혀있던 손목이, 붉게 젖어가던 밧줄이 자꾸만 떠올라서 정국은 기어이 가까이가 지민의 상태를 확인해야만 했다. 하얀 비단천으로 묶인 손목은 멀쩡했지만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가늘었고, 정국이 가까이 온 것 만으로도 지민은 결국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빌면서 안 그래도 작은 몸을 한계까지 웅크렸다.

 

지민은 혼자 과거에 갇혀있었다. 이 성의 모든 곳이 지민에게는 트라우마 그 자체였지만 가끔씩 지민은 혼자 과거로 돌아갔다. 보통은 자살기도를 막으려 묶어놨을 때나 목욕을 하고 있을 때, 드물게는 그냥 복도를 걷다가도 지민은 학대 당하던 어린 오메가로 돌아갔다. 정국이 옆에 있을 때는 하얗게 질려 뭐든 제가 다 잘못했으니 용서해달라 애원했고, 정국이 없을 땐 태형을 붙잡고 방에 돌아가야 한다고, 폐하가 화를 낼 거라고 울었다.

 

정국은 당장이라도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 겁 먹지 말라고 괜찮다고 안아 달래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정국도 잘 알고 있었다. 제가 가까이 가기만 해도 어쩔 줄을 모르는데 정국은 지민을 더 무섭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지민은 묶이는 걸 못 견뎌 했지만 과거의 정국은 다 헤진 손목을 보고도 매번 지민을 묶어두었다. 싫다고 울면 조용히 숨을 죽일 때까지 뺨을 때리거나, 밧줄을 아예 손목을 짓누르는 수갑으로 바꿔버렸었다. 정국은 오늘도 제 자신을 죽여버리고만 싶었다.

 

*

 

귀가 들리지 않았다. 고막이 찢어져버렸다고 종이에 적어주면서 태형은 곧 나을 수 있을 거라고 위로했지만 지민은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이었다. 파랗게 멍이 잡힌 얼굴이 태형은 안쓰럽기만 했다. 어제는 해가 뜰 시간이 다되어서야 침실에서 지민을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웬일로 정신을 잃지 않은 지민은 겁에 질려 있었는데, 시트가 덮인 채로 지민을 안고 나온 태형은 지민을 씻기려다 말을 잃었다. 학대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남아있는 몸은 아직도 떨림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대체 뭘로 맞은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지민에게 안 좋은 기억을 괜히 한번 더 떠올리게 할 뿐인 것 같아서 태형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태형은 우는 지민을 서둘러 씻겨 침대에 눕혔다. 아프다고 제게 매달려 우는 지민에게 태형이 해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늘어지는 지민을 일으켜 수면제를 건네주면서 태형은 향초를 켰다. 지민은 이제 잠 드는 법을 잊어버렸다. 매일 밤 실신하는 게 일상인 지민이 정신이 있는 채로 방에 돌아오면, 그날 밤은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밤새도록 앓는 걸 옆에서 지켜보고 나서야 태형은 수면제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몸에 가득한 멍이 너무 선명해서 태형은 입술을 깨물었다. 린치에 가까운 폭력을 말해주는 듯한 멍이 온몸에 남아있었다. 황제가 아무리 지민을 막 다룬다고는 하지만 이런 상태는 처음이었고, 충격을 받은 태형이 지민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눈치채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아침이 와서야 태형은 지민이 고막을 다쳤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료를 보게 하고 싶었지만 황제의 귀에 의사가 다녀갔다는 얘기가 들리면 또 아픈 지민이 끌려가야 할 것만 같아서 태형은 혼자 조용히 의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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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온다해놓고 한달..? 두달만인가..죄송합니당.. 현생이 넘나 바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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