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만히 식탁에 앉아있던 날이었어. 입맛이 없었는데 갑자기 네 손에 칼이 들리더라. 뭔가 했는데 식탁에서 주방장의 손목이 잘렸어. 그리고 그 피투성이가 된 식탁에서 나는 끝까지 밥을 먹었다? 남기면 그 때는 목을 자를 거라고 니가 그랬었거든. 표정이 왜 그래. 너도 그때는 웃고 있었잖아, 정국아. 저녁을 먹다 말고 지민이 입을 열었다. 지민의 말에 정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민의 옆에 무릎을 꿇고 또 잘못을 빌었지만 정작 지민은 그런 정국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저녁식사를 마쳤다. 미안한 척 하지마. 아니라는 거 다 알아. 웃으며 일어난 지민은 정국을 일으켜주고 방으로 돌아갔지만 정국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

 



*

 



아파요. 말 잘 들을게요. 묶지 마세요. 아파서 그래요. 가만히 있을게요. 하지마세요. 손을 등 뒤로 숨기면서 지민은 숨을 헐떡이며 울었다. 뺨을 두어대 더 맞고서야 지민은 덜덜 떨리는 제 손을 건네주었다. 다시 묶인 손목에서는 금방 피가 베어 나오기 시작했고 지민은 몸을 비틀다가 또 뺨을 맞았다. 혈관이 터졌는지 코에서 피가 흘러 하얀 시트를 적시기 시작했지만 정국은 신경 쓰지 않고 손찌검을 계속했다. 착하게 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그러겠다고 대답하는 지민에게는 제게 쏟아지는 폭력이 그만 멈췄으면 하는 생각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정사는 지민이 정신을 놓고 나서야 끝이 났다. 늘어진 지민을 안고 나가면서 태형은 입술을 깨물었다. 방안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알파 향이 가득했다. 이곳에 있던 어린 오메가가 얼마나 버거웠을 지를 생각하면서 태형은 정국에게 가벼운 인사를 마치고 침실을 나왔다. 겨우 사라지기 시작했던 멍이 다시 잡힌 얼굴이 보였다. 태형은 지민이 안쓰럽기만 했다. 지민에겐 살아있어야 한다고 늘 말하지만 차라리 그 때 함께 목이 잘렸어야 했다고 태형은 매일 생각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지민이 가진 거라고는 반려를 창녀 취급도 해주지 않는 알파와 제 편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커다란 성이 전부였다.

 



*

 



나는 니가 욕실로 부를 때가 제일 무서웠어. 숨이 안 쉬어지는 건 진짜 무서웠거든. 너는 내 머리를 계속 물 속에 넣더라. 살려달라고 울면 그냥 죽으라고 그러면서. 그런 게 재미있었어? 지민이 정국의 어깨에 기대면서 물었다. 미안하다고 되뇌는 말을 들으면서 지민은 웃었다. 나는 우리 아버지 때문 인줄 알았어. 우리 아버지가 널 죽이려고 해서 그 화를 다 나한테 푸는 거라고 생각했어. 다섯 살이었던 내 동생도 죽을 정도면 우리 아버지가 정말 나쁜 짓을 했나 보다 했거든. 근데 아니었잖아, 우리 아버지가 아니었잖아.

 

" 이제 죽여줘. 정국아. "

 

가지고 놀만큼 가지고 놀았잖아. 이제 그만하고 죽여줘. 그만 살고 싶어. 나는 네 얼굴을 보는 게 힘들고,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게 힘들어. 미안하다는 소리도, 잘못했다는 소리도 그만 듣고 싶어. 잘못했다고 말만 하면 뭐해. 너는 날 계속 옆에 잡아두려고 하잖아. 이제 놔줘. 죽여줘. 나도 목을 잘라도 되고 그냥 동맥을 그어줘도 괜찮아. 싫으면 이것만 풀어줘. 내가 알아서 죽을게. 귀찮게 안 할게. 지민은 침대 시트로 목을 매 죽으려 했지만 의자가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들어온 태형에게 들켜 실패했다. 벌써 사흘째 두 손이 묶여있는 지민은 매일 밤 떠나려 하지 말라고 매달리는 정국이 끔찍하기만 했다.

 



*

 



제발. 가기 싫어. 안 갈래. 제발. 오늘만. 태형아. 제발. 부탁이야. 오늘 하루만.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지민은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옷자락 사이로 보이는 멍울과 손목에 선명히 남은 상처를 보면서 태형은 도저히 지민을 일으켜 황제의 앞에 끌고 갈 자신이 없었다. 힘 없이 제게 안길 때조차 태형은 지민을 정국의 앞에 데려가는 게 버거웠고, 지민이 제게 가기 싫다고 매달리기라도 하면 태형은 그냥 미쳐버리고만 싶었다. 일어서지 않으려는 지민을 억지로 일으켜 안아 들자 지민은 태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울먹였다. 오늘만. 제발. 오늘 하루만, 제발. 애원하는 지민을 괜찮다고 달래주는 태형도 뭐가 괜찮은지는 알지 못했다. 괜찮은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정국이 있을 침실 문 앞에 지민을 내려두고 태형은 무섭다고 우는 지민에게 또 괜찮을 거라고 말하며 문을 열어 주었다. 한참이나 들어가지 못하고 가만히 그 자리에 서있던 지민은 정국이 왜 가만히 있냐고 타박하자 그제야 발걸음을 땠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뒷모습을 보면서 조용히 문을 닫은 태형은 머리가 아파왔다. 문밖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폭력적인 알파 향에 태형은 안에 있을 오메가가 가엽기만 했다. 방안에선 얼마 못 가 이러지 마시라고 우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문을 열어보려는 건지 문고리가 조금 돌아갔고, 바로 뒤이어 살이 찢기는 마찰음이 들렸다. 문을 막고 선 태형은 귀를 막아도 들리는 소리에 한숨을 쉬며 마른 세수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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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오려고 노력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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