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백을 믿어달라던 지민은 나중에는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울었고, 숙청이 진행된 후에는 시체를 거두게 해달라고 울었다. 제 오메가에게 모진 짓이란 모진 짓은 다 하면서도 정국은 절대 반역자의 자식을 폐위시키지 않았다. 지민은 방에 갇혀서 울다가 정국이 식사자리에 부르면 억지로 음식을 입에 밀어 넣다가 돌아오거나, 침실로 부르면 밤새 제 알파를 받아들이는 게 지민이 하는 일의 전부였다. 그리고 태형은 정국의 부름에도 가기 싫다고 버티는 지민을 힘으로 끌어내 정국의 앞에 데려다 놓는 일을 맡고 있었다.

정사가 끝난 침실에 들어가보면 지민은 숨만 겨우 쉬며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뜨거운 몸을 안아 들어 다시 방으로 데려오면 지민은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다시 쏟아내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우는 지민의 몸을 씻기면서 태형은 늘 언제쯤 지민이 울지 않는 날이 돌아올까 생각했다. 작은 몸에 상처가 끊이지 않고 보였다. 오늘도 손목이 묶였는지 다 헤진 손목이 아파 보였다. 이제 막 성년을 맞은 오메가가 잘못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황제와 결혼해 얌전히 성에 박혀 살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지민의 세상은 한 순간에 전부 무너져 내렸다
.

 

*

 


" 내 눈 앞에서 아버지의 목이 잘렸어. 너는 광장에 달린 그 머리를 억지로 보게 했어. 오른쪽부터 하나하나 그게 누구 머린지 설명해주면서. 내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내 뒤에 서있던 사람들이 한 명씩 죽었어
. "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빌었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때 나를 내려다보던 네 얼굴을 기억해. . 그리고 그날 밤에는 강간을 당했지. 여기에 손이 묶였었어. 지민이 침대 끝을 손으로 훑으며 웃었다. 나는 계속 울었던 것 같아. 왜 그랬지. 아팠었나.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숨이 넘어가라 웃는 지민의 앞에서 정국은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간간히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따위의 참회의 말이 들려왔지만 지민은 그 말에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한참을 웃고만 있던 지민은 문 밖에서 들리는 노크소리에 웃는 걸 멈췄다
.

"
찾으시네. 가보세요. 폐하
. "

침까지 돌아오지 않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지민이 정국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웃었다. 정국은 고개를 들어 지민을 올려다봤다. 하얀 목에 선명히 남아있는 상처를 볼 때마다 정국은 제 자신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지민은 어줍잖게 손목을 긋거나 하지 않았다. 지민이 살아있는 건 순전히 지민이 끝까지 칼을 밀어 넣기 전에 정국이 지민을 넘어뜨렸기 때문이었다. 정국은 목에 서늘한 칼날을 찔러 넣던 지민의 모습을 단 한 순간도 잊을 수 없었고, 그렇게까지 지민을 몰아간 건 제 자신이라는 것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

 


유골은 화장하게 해주세요
. 제발. 부탁이에요. 고향으로 보내게 해주세요. 제발요. 눈물이 쉬지 않고 떨어졌다. 며칠 사이에 눈에 띄게 어두워진 지민에게 이제 생기라고는 없었다. 살이 얼마나 빠진 건지 다 흘러내리는 옷을 걸친 채로 지민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떨고 있는 지민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정국은 지민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젖은 뺨을 내리치고, 고작 이런 일로 시간을 뺏었냐며 앙상한 발목을 짓밟았다. 용서를 구하며 무너져 내리는 지민을 태형에게 넘겨주면서 정국은 방에서 나오지 못 하게 하라고 덧붙였다
.

핏줄이 터진 뺨에 연고를 발라주면서 태형은 제 입술을 짓이겼다. 황제는 어린 오메가를 학대하고 있었다. 반역자 집안이라며 한 가문의 목을 모조리 잘랐으면서 정작 반역을 주도한 가주의 자식은 반려로 삼고 있었다. 의회는 사형을 외치다 곧 폐위로 의견을 굳혔지만 정국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경우 없는 일이라며 정국을 설득하려던 사람들은 지민이 정국에게 어떤 취급을 받는지 본 뒤로 전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태형은 사람들이 보게 된 건 정말 얼마 되지 않는 다는 걸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

 

*


우리가 그렇게 싫었어? 반역이라고 몰아붙여서 전부 죽일 만큼? 굵은 눈물 방울이 쉬지 않고 떨어졌다. 정국이 다가갔지만 지민은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제 가
족들의 기일이 다가오면 지민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울다가 정신이 들면 다시 울기를 반복했다. 서럽게 울고 있는 지민을 볼 때면 정국은 차라리 웃으며 제게 독한 말을 하는 지민이 더 낫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지민은 침대를 붙잡고 실신할 때까지 울어댔고, 정국은 지민이 울다 지쳐 쓰러지고 나서야 젖은 뺨을 닦아줄 수 있었다.

가볍기만 한 몸을 들어 침대에 눕히면서 정국은 과거의 저를 정말 진심으로 죽이고 싶었다. 박지민을 아무렇지 않게 집어 던지던 정국은 단 한번도 지민이 심각할 정도로 가볍기만 하다는 걸 생각해본 기억이 없었다. 잠든 지민을 붙잡고 한참이나 제 잘못을 빌면서 정국은 끝없는 자기혐오를 계속했다. 의식이 없는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 역시 같잖은 자기위로일 뿐이라는 걸 정국도 모르진 않았지만 정국이 할 수 있는 건 그런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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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건 과거, 이런 건 현재

알오에 중세를 끼얹고.. 왕좌의 게임보다가 후회공이 보고싶어서 쓰는 글

+폰으로 보니까 과거 현재 폰트 구별이 안되어있네요ㅜ 컴으로 보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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