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물이 닿는 것만으로 지민은 이미 아파하고 있었고 욕조는 너무 무서웠다. 태형은 제가 숨이 부족해 버둥거리는 걸 귀엽다고 생각했고, 물을 토해내는 새빨간 얼굴을 예뻐 했다. 지민은 이제 물이 무서웠고 김태형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지민이 태형과 함께 욕조를 쓰는 건 손에 꼽았고 지민은 또 제가 뭔가를 잘못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내가, 내가 뭐 잘못했어..? 화났어..? 지민은 태형에게 잡히지 않으려 욕조 끝에서 무릎을 세운 채로 울먹였다. 그리고 태형은 그 같잖은 거리감이 거슬렸다.

 

태형에게 목을 잡혀 끌려가면서 지민은 점점 더 겁에 질렸다. 벌은, 벌은 저번에 다 받았잖아.. 왜그래. 왜그래. 나 무서워. 무서워. 태형아. 잔뜩 긴장한 몸이 떨리는 게 눈에 보였다. 언제 욕조 바닥에 고개가 처박힐지 몰라 경직된 몸으로 지민은 두 팔을 겨우 들어 태형의 목에 감았다. 빨갛게 일어난 뺨을 태형의 가슴팍에 부벼가며 지민은 점점 더 가까이 몸을 붙여왔다. 무섭게 이러지마. 무서워. 무서워. 태형아. 나, 나 잘못한 거 없잖아.

 

" 잘못한 게 없어? "

 

머리채가 잡혀 억지로 고개가 들렸고 지민은 결국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지민을 울리고 나서야 태형은 장난이라고 웃으며 눈물을 닦아주고 지민을 달랬다. 목욕을 하는 내내 태형은 다정했지만 지민은 혼자 겁에 질려서 덜덜 떨었다. 그 떨림조차 혹여나 거슬릴까 갖은 눈치를 보는 오메가를 기어이 물 안에서 두 번이나 안고서야 태형은 지민을 내보내 주었다. 힘이 빠져 꺾이기만 하는 다리로 도망치듯 욕실을 나가는 지민이 태형은 귀엽기만 했다.

 

지민은 요즘 답지 않게 순하게 굴었다. 태형의 비위를 맞추려 애를 썼고 제법 귀엽게 굴었다. 귀찮게 또 아이를 가진 박지민은 낳게 해달라고 애원 아닌 애원을 하고 있었다. 먼저 임신을 했다고 말할 용기는 없고, 아이는 낳고 싶고. 그 안일한 생각이 웃기면서도 태형은 지민이 아이를 지키려 하는 게 좋았다. 증오하는 알파의 아이를 왜 그렇게 소중히 하냐고 물을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간 박지민이 정말 정신을 놓을 것만 같았고, 어차피 지민이 뭐라든 태형은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

 

유산이었다. 몇 번째 유산인지 헤아리지 않기로 했는데도 지민은 또 울었다. 태형은 원래도 아이를 원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피임을 하는 것도, 하게 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알파와 오메가가 매일같이 붙어먹는데 아이가 들어서는 것도, 거친 성관계에 아이를 잃는 것도 전부 너무 당연하기만해서 지민은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냐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묻고 나서야 지민은 뒤늦게 제가 태형의 성질을 건드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지민아. 오늘은 니가 많이 아프니까 그냥 넘어가 줄게.

 

벌은 다음에 받자. 그만 울고. 태형이 지민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아이를 가진 것도, 잃은 것도 전부 김태형 때문이었는데 저는 또 태형의 품에 안겨 있었다. 김태형을 더 자극했다가는 당장 침대 밑으로 던져질 것 같아서 태형을 밀어내지도 못한 채로 지민은 무기력하게 울고만 있었다. 지민은 이제 제대로 된 생각을 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아이를 낳았던 기억을 되짚어보면 차라리 지금 잃는 게 더 나은 것 같다는 무서운 생각을 마지막으로 지민은 정신을 놓았다.

 

*

 

아파. 아파. 태형아. 아파요.

 

벌이라고 했잖아. 아파야지. 뺨을 감싸고 있는 손을 억지로 끌어내린 태형은 부을대로 부어오른 뺨에 또 손찌검을 했다. 이미 피를 본지 한참인데도 태형은 만족하지 못한 것 같았고 지민은 엉엉 울면서 아프다고 애원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귀가 울렸고 머리가 아팠다. 입 안은 다 터져서 피가 베어 나오고 있었고 지민은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필사적으로 제 얼굴을 가렸지만, 태형의 다리 사이에 앉아서 고작 얼굴을 가린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맞는 건 너무 오랜만이었고, 지민은 이제 더 견딜 수가 없었지만 어차피 모든 건 김태형에게 달려있다는 걸 지민도 알고 있었다. 지민이 너무 울어서 토악질을 하기 시작하고 나서야 폭력이 멈췄다. 태형은 그제야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살살 쓸어주며 괜찮냐고 물었지만 지민은 제게 쏟아지는 폭력이 멈추고도 조금도 진정을 하지 못했다.

 

태형아, 태형아.. 미안해..미안해. 잘못했어.

 

지민은 이제 정말로 자신이 뭔가를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이를 잃고 반쯤 미쳐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물은 건지, 아이를 잃은 건지, 가진 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뭐든 다 제가 잘못한 것 같았다.  성치 않은 손으로 제 발목을 붙잡고 우는 지민은 절박해 보이다 못해 어딘가 넋이 나간 것만 같아서 태형은 한숨을 쉬면서도 그만 지민을 일으켜주었다. 태형이 지민을 끌어안고 이제 괜찮다고 달래준 뒤로도 지민이 진정하고 잠들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

 

그러게 왜 말을 안들어.

 

태형의 목소리가 평소보다도 낮았다. 아파서 그랬어. 아파서 못 먹었어.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진짜야. 입 안이 다 터져서, 아파서, 아파서 못 먹은 거야. 왜 그래. 그러지마. 태형아. 아파서 그랬어. 잘못했어. 잘못했어요. 지민은 또 눈물을 쏟아내며 울었다. 애를 방에 가두면 어떡해. 왜 그래. 잘못했어. 밥 잘 먹을게. 이제 잘 먹을게.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았다고 김태형은 아이를 방에 가뒀다. 지민은 어제 밤새 귀가 먹먹해지고 두 눈에 핏줄이 다 터질 때까지 뺨을 맞았다. 입 안이 멀쩡할리가 없었고 뭘 먹어도 피와 섞여 엮겨울 뿐이었다.

 

지민은 잘못했다고 울면서 멍투성이인 얼굴을 태형의 어깨에 묻었다. 아이를 방에 가두는 귀찮은 짓은 하지도 않은 태형은 지민의 애원을 즐기며 뼈만 남은 등을 쓸어주고만 있었다. 제발. 제발요. 태형아. 내가 잘못했어. 말 잘 들을게. 태형아. 태형아.. 망가진 작은 손이 제 옷자락을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박지민은 여전히 제대로 된 역할을 못하는 오른손을 주로 썼다. 멍청하기 짝이 없는 제 오메가가 귀여워서 태형은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빨리 괜찮다고 해주었다.

 

 

 


 

계속 올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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