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미안해. 잘못했어. 내가, 내가 어제 먼저 기절해서 그래..? 미안해. 오늘은 안 그럴게. 잘 할게. "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는 태형의 말에 지민은 덜덜 떨면서 무릎을 꿇었다. 태형이 먼저 나가자는 말을 하면 지민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멋 모르고 정말이냐고 되물은 날에는 발목이 비틀렸고, 지민은 나가자는 말에 응하면 어떻게 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태형은 지민을 일으켜주며 괜찮다고 말했지만 지민은 제게 웃어주는 얼굴이 무섭기만 했다. 나가지 않으려 버티는 지민을 현관까지 끌고 나온 태형은 겁에 질려 울먹이기 시작하는 지민이 귀엽기만 했다. 석진은 지민에게 이 집에서 나가는 날이 니가 죽는 날이 될 거라고 늘 말해주었지만, 막상 지금 나가자고 저를 끌어당기는 건 김태형이었다. 지민은 그런 태형이 무섭기만 했다.

 

제발. 제발. 이러지마. 잘못했어. 나가기 싫어. 제발. 문이 열리자 지민은 태형을 끌어안고 무너져 내렸다. 싫어. 들어 갈래. 나가기 싫어. 태형아. 싫어. 제발. 내가 잘못했어. 들여 보내줘. 가기 싫어. 다시 돌아가려 애를 쓰는 지민을 태형은 괜찮다며 집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떨고 있는 지민을 차에 태우고 나서야 태형은 이제 그만 그치라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파랗게 질린 얼굴로 지민은 한참을 제가 잘못했으니 그만 들어가자고 울었다. 집에 가고 싶다고 우는 지민을 눈물이 그칠 때까지 달래 준 뒤에야 태형은 운전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지민은 정말로 밖에서 저녁을 먹었다. 차에서 내리기 싫다고 우는 지민을 또 한참이나 달랜 후에야 태형은 지민을 데리고 차에서 나올 수 있었다.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 지민을 정말 괜찮다고 달래가면서 밥을 먹인 태형은 집에 돌아갈 때가 되서도 긴장을 풀지 못하는 지민이 좋았다.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지민아, 하고 부르면 서둘러 제게로 눈을 돌리는 것도 좋았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시도때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쳤다 하는 것도 좋기만 했다. 그래서, 태형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지민의 다리를 망가뜨렸다.

 

 

 

6.

지민은 많이 아프냐고 제 뺨을 쓸어주는 손에 매달렸다. 열이 끓었고 마른 입술에선 앓는 소리 밖에 나오는 게 없었다. 지민은 발목의 인대가 끊겼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도 잘못했다고 빌었고, 이러지 말라고 울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버티고 버티던 지민은 태형이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서야 제 다리를 내주었다. 어차피 지민은 제가 태형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영구적인 장애가 생겼고, 지민은 언젠가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버렸다. 이제 정말 죽을 때까지 김태형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태형은 지민이 사흘째 열이 내리지 않자 석진을 불렀다. 수액과 해열제만 가져온 석진은 발목에 감긴 붕대를 풀어보고는 미친놈이라며 욕을 했지만 태형은 이제야 좀 마음에 든다며 웃을 뿐이었다. 도망을 갔었냐는 물음에 태형은 박지민이 그럴 리가 없지 않냐고 석진을 비웃었다. 도망이라니, 박지민은 그 정도로 용기 있고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태형은 지민이 조금 덜 똑똑하고 조금 더 용감하길 바랬다. 그랬다면 벌써 예전에 두 다리를 자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기만 했다. 몇 번이나 기회를 줬지만 지민은 지금까지 한번도 제 손으로 현관문을 열지 않았다.

 

 

 

7.

지민은 항상 겁에 질려 있었다. 언제 다시 김태형이 뭔가를 자르려 할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지민은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태형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지민은 거슬리지 않으려 몸을 잔뜩 웅크리고 숨을 죽였고, 태형은 그런 지민을 억지로 일으켜 울리는 걸 즐겼다.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지민에게 걸어보라며 무리한 일을 시키거나, 아직 다 아물지 않은 발목을 밟아 댔다. 지민의 입에서는 이제 사랑한다는 말이 아주 쉽게 나왔다. 태형이 심하게 굴 때면 지민은 잘못을 빌다 지쳐 사랑한다고 매달렸다.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하는 애원임을 알았지만 겁에 질린 목소리로 사랑을 입에 올리는 박지민은 너무 귀여워서 태형은 지민을 봐주기가 힘들었다.

 

태형아. 하지마. 하지마. 무서워. 이러지마. 말 잘 들을게. 잘할게. 제발. 이러지마. 싫어. 무서워. 무서워요. 안대 하나에 지민은 벌벌 떨면서 울고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건 너무 무서웠다. 태형이 제게 하는 짓은 정해진 선이 없었다. 안대를 매고 있는 사이에 제 팔다리가 잘려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늘 지민을 미치게 만들었다. 어둠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지민이 너무 가엽고 불쌍해서 태형은 발목을 망가뜨릴 때 눈을 가리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검은 천 하나에 벌벌 떠는 지민이 너무 귀여워서 태형은 기어이 저를 붙들고 우는 지민의 눈을 가렸다.

 

" 사랑해. 사랑해요. 태형아. 얼굴, 얼굴 보고 하고 싶어. 제발. 사랑해. 태형아, 태형아. 제발요. "

 

박지민이 또 귀여운 짓을 했다. 두 손은 자유롭기만 했는데 겁을 잔뜩 먹고 울면서도 지민은 안아 달라는 듯이 팔을 벌리고 애원할 뿐 제 눈을 가린 천을 끌어내리지 못했다. 제게 사랑한다 애원하는 지민을 안아들고 침대로 가면서 태형은 잠깐 사이에 흠뻑 젖은 안대를 풀어주었다. 안대를 풀어주자 마자 지민은 태형의 목덜미에 제 얼굴을 묻고 떨어지지 않으며 태형을 끌어안았다. 사랑해. 태형아. 얼굴 보고 하자. 제발. 부탁이야. 태형은 제게 매달리는 지민을 기어이 떨어뜨려 두 눈에 키스를 해주었다. 짧은 키스 뒤에 다시 눈이 가려지자 지민은 숨이 넘어가라 울면서도 서둘러 태형을 끌어안았다. 그런 지민이 너무 귀여워서 태형은 이미 우느라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하는 지민의 안으며 제 욕심을 채웠다.

 

 

 

8.

" 산책 나갈까? "

 

나가자. 일어나, 지민아. 옷 갈아입어. 예쁜 얼굴이 일그러졌다. 금방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지민은 싫다고 마구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정말 다리가 잘려 나갈 것 같아서 지민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또 뭐가 마음에 들지 않은 건지 지민은 정답을 알 수가 없었고 웃고 있는 태형이 무섭기만 했다. 어제는 먼저 정신을 놓지 않았다. 커튼이 쳐진 창문을 쳐다본 적도, 현관 가까이 다가간 적도 없었다. 지민은 이유를 찾는 걸 그만두고 서둘러 태형에게 기어가 안겼다. 젖은 뺨을 부비며 가기 싫다고 여기 있겠다고, 여기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 싫어. 나가기 싫어. 태형아. 싫어. 제발. 밖에 싫어. "

 

나는, 나 어차피 걷지도 못 하잖아. 나가도 아무것도 못해. 안 갈래. 싫어. 여기 있자. ? 나가기 싫어. 작은 손은 간절하게 태형의 셔츠 끝을 붙잡고 있었다. 지민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 주면서도 태형은 여전히 산책을 가자고 말했다.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쏟아내며 가기 싫다고 매달리던 지민은 태형이 품에 안긴 저를 일으켜 눈물을 닦아주자 억지로 저를 끌고 나가려는 줄 알고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지만, 지민의 생각과 달리 태형은 지민의 눈물을 닦아주며 그렇게 싫으면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태형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지민이 아무 말이나 쏟아내다가 나온 우리집, 때문이었다는 걸 지민은 눈치채지 못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로스트는 이게 마지막! 그래요 저는 변태에요

 

 

 

 

 

 

 

'망상 > Lost' 카테고리의 다른 글

[뷔민] Lost 上  (8) 2017.03.01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다 잘못했어요. 이러지마세요. 폐하, 폐하.제발. 방에만 있을게요. 다신 밖으로 안나올게요. 잘못했어요. 벌도 받을게요. 제가 받을게요. 죽이지 마세요. 좋은 사람들이에요. 죽이지 마세요. 

 

겁에 질려서 바들바들 떨면서도 지민은 정국의 옷자락을 놓지 못했다. 매일 수근거리며 욕만 하는 사람들이 뭐가 좋다고 저러고 있는지 태형은 조금 짜증이 났고 정국이 또 지민에게 몹쓸짓을 할까 걱정이 됐다. 태형이 잠깐 정국을 만나러 간사이에 지민은 무슨 일인지 방에서 나왔다. 

 

" 방에만 박혀 있으라고 한 거 같은데. 여기에 니 얼굴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기는 하겠어? "

 

아니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한 거잖아요. 좋은 분들이에요. 제가 나쁜 거잖아요. 데려가지 마세요. 폐하, 제발. 정국은 무너진 지민을 일으켜 태형에게 던지듯 넘겨주었다. 데려가 다리를 분질러 놓으라는 말에 놀란 건 지민이 아닌 태형이었다. 그저 방문 앞을 지키던 남자 둘이 죽을까 겁을 먹은 지민은 지금 제 다리 따위가 중요하지 않았다. 



*

 

 

지민은 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몸에 좋을 리가 없다는 걸 알았지만 약에 취해 있을 때만 지민은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고, 정국이 그런 지민을 말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누나에게 편지가 왔다며 아무것도 써 있지 않은 종이를 들고 웃는 지민을 보고도 정국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잘됐다고 웃으며 하얀 뺨을 쓸어줄 뿐이었다. 약에서 깨서 현실로 돌아오면 지민은 제 목을 그을 물건을 찾다가, 목을 매달 끈을 찾다가, 아무것도 찾지 못하면 다시 약을 찾았다. 그런 지민을 볼 때마다 정국은 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자각했지만 그럼에도 정국은 지민을 놔주지 못했다. 

어젯밤부터 계속 약에 취해 있었다는 지민은 풀린 눈을 하고 웃고 있었다. 제 품에 안겨오는 몸이 죄책감을 느낄 정도로 작아서 정국은 또 한 번 제 자신을 찢어발기고 싶었다. 매일 밤, 정국은 정신을 못 차리고 울 때까지 이렇게 작은 오메가를 몰아갔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알파향을 풀어 두고 멍투성이인 몸을 억지로 열어 정사를 가졌다. 아래에서 바르작거리는 오메가를 힘으로 찍어 누르고 아무렇지 않게 손찌검을 했다. 문득 정국은 제 방에 들어온 지민이 멀쩡히 걸어 나간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미안해. 내가 미안해. "

 

지민은 제게 사죄하는 정국의 목을 끌어안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주었다. 용서받지 못할 일이라는 걸 정국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고, 이미 일어난 일도 되돌릴 수 없다. 정국은 세상의 이치를 잘 알고 있었지만 약에 취한 지민이 다정하게 저를 안아줄 때면 시간을 되돌리고만 싶었다. 악마가 존재한다면 흔쾌히 영혼도 팔 수 있었지만 제가 살고 있는 세상엔 신도 악마도 존재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신이 있었다면 박지민은 저를 만나서는 안됐다고 정국은 매일 밤 생각했다. 

 

 

*


박지민과 전정국의 관계는 지민의 자살기도 이후로 극단적으로 뒤집혔다. 아이를 잃은 지민은 제 목을 그으려 했고, 그걸 본 정국은 그제야 뭔가를 느낀 듯 했다. 지민은 임신이라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웃었다. 다시 제게 가족이 생긴다며 웃던 모습을 태형은 잊을 수가 없었지만, 지민은 임신 진단을 받은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 하혈 때문에 다시 의사를 불러야 했다. 그리고 그날 밤에도 정국은 지민을 찾았다. 가셔야 한다고 말하자 허망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지민이 태형은 불안하기만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태형은 심각할 정도의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지민을 만날 수 있었다. 

지민은 일주일을 꼬박 누워있다가 깨어났고 정신이 들자 마자 가문의 결백이 밝혀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민의 아버지에게 반역죄를 뒤집어 씌웠던 자들을 잡아들이고 있다는 말에도 지민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태형이 의사를 불러오겠다고 자리를 비운 사이 지민은 침대 커버를 벗겨 목을 맸다. 깨어났다는 말에 물을 가지고 들어오던 간호사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지민은 죽을 수 있던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렸다.

 


*

 

 

평생, 평생을, 우리 아버지는, 

 

지민은 절규를 하고 있었다. 저렇게 울다가는 그대로 숨이 넘어갈 것 같아서 정국은 지민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지민이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던져 대는 통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아버지 머리가, 우리 누나들이, 막내는 다섯 살이었는데, 다섯 살. 제발, 제발 나 좀 죽여줘. 미안하다며, 미안하다 그랬잖아, 부탁이야, 제발. 이제 그만할래. 제발. 더 못 하겠어. 

 

정국은 사람을 불러 지민을 묶어야 했다. 지민이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은 정국이 유일했다. 간호사 둘이 들어오자마자 지민은 그들이 다칠까 쥐고 있던 책을 내려놓았다. 묶이는 걸 끔찍히 싫어하면서도 얌전히 손을 내주는 걸 보면서 정국은 마른 세수를 반복했다. 전부 너 때문에 죽은 거라며 들이밀었던 시체들과, 그 앞에서 무너지던 작은 몸이 잊혀지지 않았다. 

 

 

*

 

 

황제를 죽이려 했어. 법대로 하면 가문을 전부 죽여야 하는데 어차피 남은 건 나 하나뿐이라 편하겠다. 얼른 죽여줘. ? 부탁이야. 죽여줘. 제발. 

 

정국은 잠에서 깨자마자 제 목을 조르고 있는 반려를 보게 되었다. 작은 손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었지만 멀쩡한 알파의 숨통을 조르기엔 부족하기만 해서 정국은 또 마음이 아팠다. 가느다란 손목엔 제가 남긴 자잘한 흉터들 위로 지민이 깨진 화병으로 난도질 해 놓은 상처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민은 곧 힘이 빠져 정국의 몸 위에 엎어졌다. 제 어깨에 얼굴을 묻고 제발 이제 그만 죽여 달라 애원하는 지민을 정국은 보내줄 수가 없었다. 

 

 

 

 

 

 

 

 

------------------------------------

으어어,,너무 바빠요,,,방학하면 좀 자주 올 수 있으려나,,.ㅠㅠ

기다리신 분들 너무 죄송해요ㅠㅠㅠㅠ 덧글..덧글 조아여,,,

 

 

'망상 > Regre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민] Regret 下  (6) 2018.04.06
[국민] Regret 中  (9) 2018.02.14
[국민] Regret 上  (10) 2018.02.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