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목이 졸리는 건 늘 무섭다. 되도 않는 힘으로 김태형의 손을 치우려해봤자 치워질리도 없었고 지민은 그저 한손으로 제 숨통을 틀어쥐는 태형의 악력에 감탄하면서 본능적인 버둥거림을 억누를 뿐이었다. 목을 조르면서도 태형은 허리짓을 멈추지 않았다. 제 몸의 감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태형은 꺼리낌없이 목을 졸랐다. 몸에 힘이 풀려 늘어지고 나서야 태형이 쥐고있던 제 목덜미를 놔준다는 걸 지민은 알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를 알고 있음에도 막상 목이 졸릴 때면 지민은 이대로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무서웠지만 벗어나겠다고 몸을 비틀면 또 제 얼굴에 주먹이 박힐게 뻔해서 지민은 그저 울면서 태형이 저를 놔주길 기다려야만 했다.

기침이 터져나왔다. 숨을 몰아쉬면서 지민은 그 와중에도 제 아래를 헤집는 인정없는 김태형 때문에 몇 번이나 혀를 깨물어야했다. 태형은 가학적인 성관계를 즐겼다. 피가 베어나올 때까지 이를 박아넣고, 손찌검을 했으며 종종 목을 조르고 손발을 침대에 묶어 놓기도 했다. 지민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억지로 들어올려 태형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그를 끌어안았다. 태형에게 심한 짓을 당하지 않으려면 태형이 제 목을 조를 수도, 뺨을 때릴 수도 없게 가까이 붙어있는 방법 밖에 없다는 걸 지민은 알고 있었고 태형은 또 속이 훤히 보이는 짓을 하는 지민이 귀엽기만 했다.


2
안 도망가. 정말로 안갈거야. 제발. 믿어줘. 이러지마. 이러지마. 손발이 전부 의자에 묶여있는 지민은 겁에 질려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왜 그래. 나 말 잘 듣잖아. 하지말라는 건 아무것도 안했잖아. 나 나가려고 안해. 그런 생각 한 적도 없어. 제발. 이러지마. 태형아. 제발. 풀어줘. 이러지마. 나 무서워.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지민은 애타게 태형의 이름을 불렀다. 정말 제 다리를 자르려는 건지 태형은 손에 톱날을 들고 있었고 바닥에는 수건과 붕대, 수혈팩이 보였다. 태형아. 이러지마. 제발. 하라는 대로 다 했잖아. 도망 안가. 정말이야. 안나갈거야. 제발. 무서워. 이러지마.

" 그래. 어차피 안나갈건데 다리가 왜 필요해. 안 그래, 지민아? "

태형아. 제발. 내가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잘할게. 더 잘할게. 너 불안하게 안할게. 안그럴게. 미안해. 안그럴게. 잘못했어. 내가, 내가 더 잘할게. 나 나가려고 안해. 정말이야. 이러지마. 제발. 무서워. 풀어줘. 태형은 울부짖는 지민의 고개를 들어올려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큰 손에 서둘러 제 뺨을 비비면서 지민은 풀어달라고 매달렸지만 태형은 저를 놓아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지민이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무너져내리는 걸 보면서도 태형은 웃으며 여기서부터 자르자고 지민의 허벅지를 가로로 그어보일 뿐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울던 지민은 석진이 들어오자마자 드디어 미친거냐며 태형을 말려주는 덕에 풀려날 수 있었다. 묶어두었던 손발을 풀어주자마자 지민은 태형에게 안겨들었다. 태형의 어깨에 제 얼굴을 묻고 우는 지민의 몸은 아직도 벌벌 떨리고 있었다. 석진은 질린다는 얼굴로 태형에게 적당히하라고 말했지만 태형은 웃으며 제게 안겨있는 지민의 등을 쓸어줄 뿐이었다. 석진은 한달에 두어번 정도 태형의 집에 들렀다. 가끔 잔소리를 하지만 태형에게 빚이 있는 석진은 태형이 지민을 납치했다는 것도, 감금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태형에게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3
" 아파..아파. 태형아. 아파. "

하얀다리는 힘이 잔뜩 들어간채로 떨리고 있었다. 두 손으로 침대 시트를 꽉 붙잡고 지민은 잠긴 목소리로 아프다며 태형의 이름을 불렀다. 박지민은 아직도 제 뒤를 풀어주는 손가락을 버거워했다. 태형은 항상 처녀처럼 구는 지민이 귀엽다고 생각하면서도 지민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풀어주고 박을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지민아. 이런걸 아파하면 어떡해. 태형은 웃으며 손가락을 하나 더 늘렸고 지민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허리를 들어보려다 들켜 뺨을 맞았다. 멋대로 저지른 그 작은 행동에 더 이상의 배려가 필요없다고 느꼈는지 태형은 무작정 제 페니스를 밀어넣었고 지민은 막혀버린 비명을 지르며 울어야했다.

지민은 이미 바뀌어버린 제 인생에 수긍한 상태였다. 나갈 수 없다는 것도, 김태형이 제 눈물에 약해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얌전히 김태형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도 지민은 모두 알고 있었다. 지민은 그저 태형에게 거슬리지 않게 비위를 맞춰야 제가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다는 걸 알았고 지민은 늘 순종적이기만 했지만 그럼에도 태형은 주기적으로 히스테리를 부렸다. 태형은 주로 지민의 다리를 자르려 하거나 발목이나 무릎의 힘줄을 끊어놓으려 했는데 지민은 그럴 때마다 그저 제가 더 잘하겠다고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석진이 몇 번이나 기겁을 하고 집에 있는 쇠붙이들을 가져다 버려도 태형은 매번 새로운 연장을 구해오는 듯 했다.


4
태형은 밤새 혹사당한 몸을 굳이 제게 걸어오게 했다. 제대로 걷지 못하던 지민은 몇 번이나 균형을 잃고 넘어지자 벽을 짚으면 안되겠냐고 울먹이며 물었다. 태형이 순순히 허락해주자 지민은 서둘러 벽에 몸을 기댔다. 지민은 벽에 기댄 후에도 툭하면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힘겹게 제게 다가오는 지민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태형은 제 앞에 도착하자 마자 제게 안기는 지민을 보고 작게 웃었다. 다시 저를 일으켜 세울까 불안해하는 지민을 안아들어 소파에 뉘여준 태형은 이 정도면 묶어둘 필요는 없겠다고 말하며 코트를 걸쳤다. 지민을 혼자 둘 때는 항상 손목을 침대에 묶어뒀지만 오늘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 지민아. 나가려고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
" 망치, 망치로 무릎뼈를, 다, 조각낸다고.."

작은 몸이 크게 동요했다. 뻗고 있던 다리를 접어 몸을 웅크리는 지민을 보고 태형은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다녀올게. 제게 입을 맞추고 집을 나서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지민은 현관문이 닫히는 것과 동시에 소리내 울기 시작했다. 지민은 태형이 무서웠다. 지민은 석진이 제게 해준 얘기를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전에 이곳에 있던 여자가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지민은 알고 있었다. 혼자 남겨질 때면 몇번이나 지금 나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문을 열자마자 태형이 웃으며 저를 반길 것만 같아서 지민은 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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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민] Lost 下  (8) 2018.06.22

 

 

 

지민은 침대 끝에 등을 기댄 채 앉아있었다. 병적으로 손톱을 물어뜯는 지민의 눈은 벽에 걸린 시계에 고정되어 있었다. 10시가 넘었는데도 여전히 정국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지민이 오늘은 안심해도 되는 걸까, 하고 쓸데없는 희망을 가질 때쯤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소리에 지민은 서둘러 피가 맺힌 손을 숨기고 현관으로 향했다.

 

" 손은 왜 숨겨. "

 

지민이 뒤로 숨겨놓은 손을 정국은 억지로 잡아당겨 기어이 엉망이 된 손가락을 확인했다. 잘못했어. 때리지 마. 때리지 마. 정국아. 지민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곧 뺨을 맞게 될 거라는 생각이 지민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리고, 뜻밖에도 정국은 지민을 때리지 않았다. 제가 늦어서 불안했던 거냐고 웃으며 정국은 지민을 끌어안았고, 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히 정국의 품에 안겼다. 지민은 맞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하나로 만족하고 있었다.

 

*

 

도망가려 그런 거 아니야. 진짜, 아니야.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작은 손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바르작거리고 있었다. 도망가려던 게 아니라고 말하던 지민은 결국 고개를 떨구고 정국의 눈을 피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하고 정국은 지민을 비웃었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지민의 어깨에 팔을 올린 정국은 잔뜩 굳어서 얼어있는 지민이 귀엽기만 했다.

 

" 어디 가려 그랬어? "

 

" ..? ..."

 

어디가려 그랬냐고 묻잖아. . 제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에 지민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머릿속이 하얘져서 생각해뒀던 변명들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영화보고 싶다며. 영화가 보고 싶은 게 아니었나봐. 나도 사실 이 영화는 별로였는데 우리 그냥 집에나 갈까? 정국이 손끝에 들린 영화표를 흔들며 말했고 지민은 몸을 틀어 정국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영화 볼래. 영화보자. 제발. 예쁜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제 가디건 끝자락을 잡은 손도 떨리고 있었고 동그란 어깨도 떨리고 있었다. 정국은 웃었다. 어느새 제 시야에서 사라진 지민을 정국은 영화관 입구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박지민은 이곳에 있을 타당한 이유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이대로 영화관을 나가버리고 싶었지만 정국은 화를 참아주기로 했다.

 

" 마지막 외출이야. 알아들었어? "

 

마지막, 이라는 수식어에 지민은 놀란 듯이 고개를 들었다가 정국의 표정을 보고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뭐라 더 말을 꺼냈다간 정국의 화를 돋우는 것 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지민은 저를 앞서 보내는 정국을 의식하며 똑바로 걸으려 애썼지만 잠깐 사이에 힘이 풀린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전정국이 저를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지민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

 

잘못했어. 정국아. 잘못했어. 반성할게. 정국아. 정국아. 지민은 제 손을 등 뒤로 숨겼다. 지민은 묶이고 싶지 않았다. 아플 거야. 아픈 거 싫어. 정국아. 내가 잘못했어. 이미 한 대 맞아서 붉어진 얼굴로 지민은 고개를 저어댔다. 정국은 어차피 곧 제가 힘으로 박지민을 누르고 손목을 묶어놓을 거라는 걸 알았지만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비는 꼴이 귀여워서 아주 잠깐 지민을 봐주고 있을 뿐이었다.

 

" 아픈 거 싫다며. 더 맞을 거 아니면 얼른 손 줘."

 

정국아, 정국아. 하고 제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박지민은 예뻤다. 억지로 손목을 끌어와 묶어버리자 지민은 또 겁에 질려서 몸을 움츠렸다. 딱 생긴 대로 논다고 정국은 지민을 보면서 늘 생각했다. 박지민은 겁이 많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다. 착한건지 멍청한 건지 거절이란 걸 할 줄 몰랐고, 가둬둔 뒤로는 늘 주눅이 들어있었다.

 

정국은 지민이 귀엽기만 했다. 저를 속일 수 있을 만큼 영악하지도 못했고, 제대로 된 반항을 해볼 만큼 용감하지도 못했다. 울혈이 가득한 허벅지를 잡아 벌리자 작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아프게 하지 말라고 울먹이는 목소리는 오히려 가학심을 자극했지만 지민이 그런 걸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삽입과 동시에 지민은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아파서 일그러지는 얼굴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정국은 아파하는 지민이 예쁘다고만 생각했다.

 

*

 

울어? 왜 울어. 지민은 제 뺨을 만져주는 손이 무서웠다. 도망가고 싶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벽에 기대서, 다가오는 정국에게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려고 몸을 웅크리는 게 지민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마지막 외출이라고 말 해줬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났어? 정국이 웃었고, 지민은 머리가 하얘졌다. 무슨 배짱으로 나가려 했었는지는 이미 잊혀진지 오래였다.

 

상처투성이인 발에 정국의 시선이 멈춰있는 게 보였다. 지민은 숨을 멈추고 몸을 더 웅크려 제 발을 숨기려 했다. 정국은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제 앞에서 겁을 있는 대로 집어먹고 울고 있는 지민이 예뻐 보일 뿐이었다. 발이 피투성이가 되어 버린 건 조금 거슬렸지만 다시 찾지 못 한 것도 아니었고, 지민은 이미 제 잘못을 충분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대로 넘어가면 박지민은 또 나갈 거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국은 벌벌 떠는 지민을 일으켰다.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한번만 봐주세요. 다신 안 그럴게요. 말을 높이는 박지민도 정국은 역시 귀엽기만 했다. 잘못했다고 매달리는 지민의 발목을 비틀고 나서 정국은 숨도 못 쉬고 우는 지민을 품에 안았다. 제 품에서 헐떡이는 작은 몸을 보면서 정국은 우습게도 지민이 안쓰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잔뜩 부어오른 발목을 누르는 손에 지민은 신음했다. 정국아. 아파. 아파. 그만해. 아파. 소매를 붙잡고 있는 손이 바들바들 떨리는 게 보였다. 정국은 제게 매달리는 지민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이미 지쳐 보이는 지민은 아침부터 저를 괴롭히는 정국에게 제발 그만해달라며 울먹이고 있었다. 지민은 제 잘못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정국이 저를 몰아붙이는 것도 당연하다는 걸 알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지민은 정국이 망가뜨린 발목이 너무 아팠다.

 

하얗게 질린 얼굴이 눈물로 얼룩지기 시작했다. 정국은 기어이 지민을 울리고 나서야 얼핏 봐도 아파보이는 발목을 손에서 놔주었다. 정국이 저를 놔주자마자 지민은 침대 끝으로 기어가 몸을 웅크리고 작은 손으로 연신 눈물을 닦아냈다. 정국이 제게서 눈을 떼고 방에서 나가고 나서야 지민은 눈물을 그칠 수 있었다. 지민은 정국이 무서웠다. 이젠 정국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도 지민에겐 너무 버겁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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