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예쁘다, 예쁘다 해주니까 아주 미친 거야? "

 

지금 뭐하는 거야. 지민아. 태형은 한숨을 쉬며 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지민은 과도를 제 목에 찔러 넣으려 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보이는 게 죽어버리겠다며 저를 협박하는 제 오메가라니, 태형은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지민이 울면서 하는 말은 아이가 보고 싶다는 게 전부였다. 과도를 쥐고 있는 손은 형편없이 떨리고 있었고, 겁을 먹은 건지 하얗게 질려있는 지민이 태형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된다고 벌써 몇 번이나 못을 박은 것 같은데 박지민은 여전히 마음을 접지 못한 것 같았다. 아이를 아끼는 지민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렇게 나온다면 조금 곤란했다.

 

" 니가 잘못 생각하는 게 있어. 지민아. "

 

니가 죽으면 니 애가 그대로 니 꼴이 날거야. 조그만 애가 끌려와서 여기 묶여있는 꼴이 보고 싶으면 지금 죽고, 아니면 빨리 그거 내려놓고 이리 와서 빌어. 애를 저처럼 살게 하겠다는데, 지민이 제 목숨을 끊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목에 칼만 들이밀면 제가 뭐든 해줄 거라 생각한 듯한 지민이 태형은 멍청해 보이기만 했다. 지민은 얼마 못가 쥐고 있던 과도를 떨어뜨렸다. 벌벌 떨면서 태형의 앞에 나온 박지민은 이미 서럽게 울고 있었다. 지민과 피를 나눈 가족들은 이미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시 생긴 제 혈육이 지민은 너무 소중하기만 했고, 지민은 그런 아이가 잘못되는 걸 볼 수 없었다.

 

예쁜 입술에서는 곧 참회의 말이 쏟아져 나왔고, 태형은 웃으며 제 앞에 꿇어앉은 지민의 머리채를 잡았다. 저번에도 말했잖아, 이번 아이는 너랑 똑같이 생겨서 죽이지 않을 거라고. 니가 죽으면 이제 걔가 대신 니 자리를 채우겠지. 아이 얘기가 나오자 지민의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우느라 다 뭉그러진 발음으로 잘못했다고 매달리는 지민을 태형은 노골적으로 비웃었다. 지민아. 이렇게 사는 건 너 하나로 충분하잖아. 우리 아이는 제대로 된 환경에서 자라야지. 너처럼 여기 갇혀서 내 오메가가 되면 안 되잖아.

 

" 그렇지? "

 

큰 손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뺨을 쓸었다. 박지민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숨이 넘어갈듯이 울면서 그러지 말라고 애원하는 지민이 태형은 귀엽게 보이다가도, 목에 칼을 들이대던 모습을 생각하면 그냥 넘어가 줄 수가 없었다. 그러지마. 죽으려고 안할게. 계속 여기 있을게. 얌전히 있을게. 내가 말도 잘 듣고, 나가려고도 안할게. 그러지마. 제발. 내가 있잖아. 나 하나면 되잖아. 잘못했어. 다시는 안 이럴 거야. 정말이야. 안 그럴게. 그러지마. 아기한테 나쁜 짓 하지 마. 제발. 태형아. 대답해줘, 제발. 안 그럴 거잖아. 안 그럴 거라고 해줘. 태형아.

 

지민이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면서도 태형은 대답이 없었다. 지민이 먼저 제게 안겨오자 태형은 그제야 지민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 사진은 없어. 있던 것도 다 버릴 거야. 한번만 더 이래봐. 지민아. 어떻게 되나 보고 싶으니까. 안 그러겠다고 쉴 새 없이 고개를 젓는 박지민을 보면서 태형은 역시 박지민은 다루기 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멍청한 오메가는 제 아이를 사랑했다. 이름도 모르고, 안아본 적도 없는 아이를 사랑하는 박지민이, 태형은 고마울 뿐이었다. 제가 지민의 아이만 들먹이면 지민은 뭐든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 지민아. 포기하면 편해.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

 

. 알아. 알았어. 포기할게. 만나려고 안할게. 여기서 나가려고도 안할게. 잘못했어. 다신 안 그럴게. 정말이야. 이제 포기할게. 아기한테 안 그럴 거지? 태형아. 내가 있잖아. 나만 있으면 되잖아. 태형의 가슴팍에 지민은 열심히 제 뺨을 비볐다. 애초에 지민이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항상 우위에 있던 건 김태형이었지만, 그래도 반항이 소득이 있었던 관계를 온전히 태형의 손에 쥐어준 건 지민이었다. 태형의 입에서 아이의 얘기가 나오면 지민은 뭐든 그러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소중한 아이를 제 꼴로 만들겠다는데 지민이 더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2.

날이 밝자마자 의사가 찾아왔고, 지민은 감히 제 목숨으로 태형을 협박하려 했던 벌을 받았다. 이러지 말라는 애원 한번을 못 해보고 지민은 순순히 제 손목을 내주었다. 인대를 끊는 것보다 손을 자르는 게 더 쉽다는 말은, 제가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으면 아예 손을 잘라버리겠다는 의미라는 걸 지민은 알고 있었다. 한순간에, 오른쪽 손목에 인대가 끊겼다. 마취는 태형이 거절했고, 의사는 정말이냐고 물으며 지민을 쳐다봤지만 지민은 태형의 품에서 떨고 있다가, 태형이 묻자 그저 넋을 놓고 고개를 끄덕이는 게 전부였다.

 

의사가 돌아가자마자 태형은 지민을 안았다. 망가진 손목으로는 이제 침대 시트를 휘어잡을 수도, 태형의 허벅지를 밀어낼 수도 없었다. 지민은 태형을 받아내는 게 버거웠지만 태형은 이미 지쳐 늘어져 있는 지민을 몇 번이나 다시 울리고, 또 울렸다. 지민이 태형의 아래에서 벗어나려 침대를 기면 태형은 하얀 붕대가 감긴 손목을 짓이겼다. 부르튼 입술에서 나오던 아프다는 탄식은 얼마 가지 않아 전부 잘못했다는 사죄의 말로 바뀌었고, 곧 놔달라는 부탁이 되었다. 그 애원의 과정을 즐기면서 태형은 오랜 시간을 들여 제 오메가를 탐했다. 태형이 만족하고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지민은 엉망인 몸을 하고 숨만 겨우 쉬고 있었다.

 

3.

태형은 더 이상 지민에게 아이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지민과의 대화는 이제 일방적인 명령이 전부였다. 6개월이 넘어가자 지민은 그저 누워서 울다가 몸을 내주며 울고 밥을 먹으며 울고 자기 직전까지 울다가 울면서 일어났다. 엉망으로 짓무른 눈가는 지민이 하루 종일 울고만 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태형이 끝없이 지민을 몰아붙여도 지민은 그저 서럽게 울기만 할뿐, 태형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박지민이 괘씸해서 아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눈에 훤히 보일 때면 태형은 일부러 더 깊이 제 성기를 밀어 넣었고, 점점 더 자주 발정제를 놓았다.

 

발정제를 맞추거나 사이클이 돌아와야 지민은 겨우 제게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마저도 다 갈라진 신음소리나 아프다는 애원이 전부였지만 태형은 그렇게 밖에 지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지민은 점점 더 말라갔고 한 달에 두어 번 오던 의사가 이틀에 한번 꼴로 들르게 되고 나서야 태형은 심각성을 느꼈다. 막아버렸던 창문을 다시 들어내고 지민에게 가운이 아닌 옷다운 옷을 사다주기 시작했다. 손찌검을 하지도, 거친 관계를 갖지도 않았지만 지민은 여전히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실신하기 시작한 뒤로도 지민이 몸이 나아지면 아이를 보여주겠다는 말을 듣기까지는, 3개월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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